차분한 연극을 보러 갔을 때는 첫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절대적 암흑이 무대와 관객석을 뒤덮을 때가 있다. 불과 몇 초 안 되는 순간이지만, 완전한 암흑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관객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떤 장면부터 다시금 우리의 주의력을 끌어갈 것인가?
우리의 뇌는 절대적 암흑이나 절대적 고요를 잘 버텨내지 못한다. 2006년 영국의 방송사인 BBC는 완전한 감각 박탈이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해 보았다. 건강한 자원자를 모집한 후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독방에서 48시간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들은 독방에서 지내는 동안 끊임없는 환각현상(줄무늬 등의 기하학적 패턴으로부터 살아 있는 뱀이나 용 같은 괴물의 모습까지)에 시달렸으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지속된 불안을 참아내야만 했다. 48시간이 지난 후 피험자들의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 등을 점검했을 때, 이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으며 피암시성이 높아져서 연구진들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실험은 세계 각국에서 행해졌는데, 일본 나고야 대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지름이 2.3m 높이가 3.3m인 방에는 안락의자, 책상, 수도꼭지, 변기가 놓여있고, 실내의 조명은 40lux, 온도는 24℃로 유지한다. 이 방안에서 한 명이 3일 동안 지내게 했다. 이 사람에게는 방 속에 갇힌 자신의 감정을 기록한 종이를 제출할 때마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먹을 것이 전달된다. 방에 있는 사람의 음성은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지만, 외부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이들은 처음에는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곧 피해망상이나, 환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환경에 저항할 의욕이 사라지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3일이 지나자 심한 허탈감에 빠졌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전반적으로 차분해지기 시작하여 이들보다 더 오래 버틸 수가 있었다.
193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인 볼프강 메츠거(Wolfgang Metzger)는 인간에게서 시각 자극을 박탈했을 때 환각을 보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간츠펠트(ganzfeld)라는 독일어는 한국말로는 전체시야(total field)정도로 해석된다. 간츠펠트 효과는 인간의 뇌에 가해지는 아무런 자극이 없을 때에는 뇌는 무언가 대체할 자극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시각과 청각을 차단하여 어떠한 자극도 입력되지 않도록 하면, 뇌는 거짓 신호를 만들어내서라도 절대적인 감각 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환각과 환청이다. 이러한 감각박탈로 인한 이상현상은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 광산 붕괴사고로 수십 일동안이나 매몰된 광부나, 온통 하얀 눈밖에 안 보이는 남극에서 몇 달을 보내야 하는 연구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각과 청각을 차단하여 어떠한 자극도 입력되지 않도록 하면, 뇌는 거짓 신호를 만들어내서라도 절대적인 감각 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환각과 환청이다. 이러한 감각박탈로 인한 이상현상은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 광산 붕괴사고로 수십 일동안이나 매몰된 광부나, 온통 하얀 눈밖에 안 보이는 남극에서 몇 달을 보내야 하는 연구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9년 7월 21일 밤 11시 35분쯤 남극 세종기지에서 이해할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종기지의 총무 박모(46)씨가 주방장 A(38)씨를 식당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것이다. 박씨는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와 식당 집기를 집어던졌고, 주먹과 발로 A씨를 난타했다. 박씨는 옆에서 말리는 김씨를 업어치기로 메다꽂고, 양주를 담는 얼음통으로 A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반항도 못하고 계속 맞기만 하던 A씨는 박씨가 소화기를 집어들자 식당 밖으로 도망쳤고, 박씨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A씨를 쫓아 식당을 뛰쳐나갔다. 살해 위협에 시달린 A씨는 추위에 떨면서 새벽 4시까지 창고에 숨어 있어야 했다.
문명과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남극, 그와 같은 곳에서 이들이 견뎌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우리가 상상을 못할 정도이다. 장기간 고립된 상황에 따른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스트레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극저온의 날씨와 몇 날 며칠이고 밤만 계속되는 나날들, 그렇게 고립된 기지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생활을 하다 보면 그들은 극단적인 감각박탈과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그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심리적 고립감, 불안감 등으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리고 때로는 정서 장애나 간혹 이상 행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1984년 아르헨티나 기지에서는 기지 대장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신의 기지에 불을 지르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들은 손만 뻗으면 쉽사리 닿는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기 덕분에 감각박탈에 놓일 상황은 거의 없고 오히려 감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 놓여있다가 갑자기 이러한 기기들이 주변에서 없어진다고 치자. 그러면 마치 감각 박탈 상태에 놓인 것처럼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에 지쳐버리게 된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복잡한 문명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기에 매우 지치고 피곤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감각의 박탈 속에서는 더더욱 살 수 없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대인관계가 축소되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코로나 전에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수많은 관계와 집단 속에서 생활했지만 이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환경에 대해 고마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이 모든 상황들을 변화시켰다.
이처럼 우리 현대인들은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에 노출되기 쉽다. 감각의 홍수 속에서의 시림적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다가 무기력에 빠지는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 코로나와 스마트팩토리화로 인한 '간츠펠트 효과'의 위험성, 리스크랩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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